얼마 전에는 서구 쪽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러 다녀왔다.
매도인은 내가 예전에 시내에서 음반 제작 사업을 할 때 단골로 찾아오던 손님이었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인터넷에서 내가 쓴 글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사무실까지 찾아오셨다.
요즘 들어 부쩍 느낀다.
젊은 세대들은 부모님께 받은 은혜에는 보답하지 못한 채 다시 그 어깨 위에 손주의 양육이라는 짐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이 고객님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따님이 결혼 후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고 아이가 생기자 부모님께 함께 이주해서 육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결국 고객님은 그 요청으로 인해 현재의 아파트를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고객님의 부인이 고객님이 우리부동산에 매매를 의뢰한 뒤에도 빨리 거래가 되지 않자 아파트 인근 부동산에 매매 의뢰를 했다고 한다.
고객님은 그곳까지 직접 찾아가 “금메달부동산과 공동으로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그 부동산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선뜻 이런 제안을 허락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님은 이미 발길을 돌린 일간신문에 광고를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그분께 “요즘은 ‘우리 한방’에도 매물이 많고 공동중개도 활성화돼 있어 신문광고 못지않은 효과가 있습니다.”라며 안심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 광고를 보고 다른 부동산이 공동중개를 제안해왔는데 괜찮을까요?”
나는 흔쾌히 말했다.
“쓰리 공동이든 포 공동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건 빠른 매도입니다.”
고객님은 이미 타 지역의 아파트를 계약해둔 상태라 시간이 급했다.
며칠 뒤 그 부동산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른 중개업소에서 손님을 모시고 왔는데 함께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서구로 향했다.
계약서를 살펴보던 중 특약사항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매도인은 잔금일로부터 1개월 내 발생한 누수 등 하자에 대해 책임을 진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은 잔금일까지의 하자에 한정되는 게 원칙입니다.
잔금 이후의 문제까지 책임을 지는 건 법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대 부동산 두 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지역은 보통 잔금일로부터 1개월 많게는 3개월까지 적습니다.”
물론 하자담보책임은 ‘임의규정’이다. 당사자 간 합의로 얼마든지 달리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중개사 입장에서 보면 한 번의 계약이 너무 길게 족쇄처럼 발목을 잡는 건 현명하지 않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속히 마무리하고 다음 현장으로 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잔금일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한 달 뒤 누수가 생겼다고 하자.
그때 매도인과 매수인은 과연 원만히 합의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가장 만만한 존재인 공인중개사를 찾아와 “책임을 져라” 하며 매개체로 이용하려 들까?
왜 우리는 공평한 계약을 만들면 될 일을 스스로 복잡하게 꼬이게 만들까.
차라리 이런 특약은 어떨까.
“매도인이 매매대금을 감액하여 준 만큼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을 묻지 않는다.”
“매도인은 잔금일까지의 하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잔금 이후의 하자는 매수인이 부담한다.”
하자담보책임의 ‘6개월’이란 잔금일로부터가 아니라 하자를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쪽 즉 매수인에게 있다. 말처럼 간단한 싸움이 아니다.
이제는 생각한다.
우리 공인중개사들은 쉬운 길이 있다면 굳이 돌아가지 말자.
불필요한 분쟁을 만들기보다
공정하고 단단한 계약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자.
그게 결국 우리 모두를 유유자적한 삶으로 이끌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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